이란(Iran)

2018년 2월 24일

개요

  • 명칭 : 이란 이슬람 공화국(Islamic Republic of Iran)
  • 면적 : 1,648,196㎢. 북부 카스피 해와 남부 페르시아 만, 오만 만 사이에 위치.
  • 수도 : 테헤란 7,241,000명. 기타 주요도시 : 마슈하드 2,700,000명, 이스파한 1,700,000명
  • 도시화 : 69.5%
  • 15세미만인구 : 24%
  • 평균수명 : 71.2세
  • 인구 : 80,877,000명

 

종족

약 100개 인종 집단이 있지만, 페르시아족과 아제르바이잔족이 지배적이다.

 

정치

시아파 이슬람 혁명 때 샤(과거 이란의 왕)가 폐위되고, 1979년 신정 이슬람 공화국이 출범하였다. 1980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침공한 사건으로 아야톨라(이란 이슬람 시아파 지도자)의 통치가 강화되었다.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이란의 결심과 그 권리에 대한 굳은 신념이 거의 모든 이란인을 단합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야망이 단지 에너지를 얻기 위함일 뿐이라는 보증에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이란의 행보를 두려워한다.

경제

석유와 천연가스에서 얻은 거대한 부가 수출 소득의 80%를 차지한다. 부패와 정치·종교적 전쟁으로 많은 잠재적인 외국 투자자가 투자를 뒤로 미루고 있다. 소득 재분배와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는(적어도 그렇게 시도하려는) 최근 개혁도 충분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급속한 도시화와 초기 급속한 인구 성장은 도시에 수백만 명의 청년 실업자를 양산해냈다. 실업률이 최근 28%에 달했다. 동양과 서양 사이, 카스피해와 페르시아만 사이에 있는 이란의 전략적 위치는 앞으로 경제가 더 크게 성장하도록 도울 것이다.

  • 인간개발지수 : 182개국 중 88위.
  • 1인당소득 : 4,600달러(미국의 10%, 1982년에는 미국의 18%였다)

 

종교

시아파 이슬람교가 국교이며 이란인의 89%가 신봉한다. 투르크멘족, 쿠르드족, 발루치족은 수니파 이슬람교를 신봉한다. 헌법은 유대인, 조로아스터교도, 아시리아와 아르메니아 기독교인과 같은 역사적 종교적 소수파는 인정하지만 바하이교는 인정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란은 이슬람 성직자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종교적인 독재국가이다.

  • 미전도 종족 : 86개 (89.6%)
  • 인구 중 미전도 인구 : 80,559,000명 (99.6%)
  • 주요종교 : 이슬람교 98.65%, 기독교 0.51%, 바하이교 0.4%, 유대교 0.02% 등
  • 기독교 박해 지수 : 10위

 

기도제목

1. 2005년 이후 특정 소수파에 대한 종교적 핍박이 강화되었다. 특히 바하이교(이란에서 시작되었으나 건전한 종교 집단으로 인정되지 않는 종교), 수피파 무슬림, 기독교인,특히 무슬림에서 개종한 신자가 그 대상이다. 정부에 따르면 오직 아르메니아인과 아시리아인만이 기독교인이다. 페르시아인은 무슬림으로 정의되기 때문에 페르시아 기독교인은 확실히 배교자가 된다. 따라서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거의 모든 기독교 활동은 불법이고, 특히 페르시아어를 사용한 복음 전도와 성경 훈련,성경, 기독 서적 출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정권이 기독교인을 가혹하게 대우하는 것은 교회 성장의 불길을 더욱 북돋울 뿐이다. 핍박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몸이 계속 배가하고 성숙하도록 기도하자.
2. 규모가 큰 기독교 공동체는 주로 소수 아시리아인과 칼데아인을 포함한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이다. 그들은 무슬림의 바다에서 문화적, 언어적으로 고립된 섬이다. 비교적 평화롭게 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가족에게 더 안정되고 보장된 미래를 제공하려는 갈망 때문에, 또는 핍박, 일자리와 교육에서 받는 차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슬람보다 수세기 앞서 존재한 공동체의 자양분을 버리고 많은 사람이 이주하고 있다. 이러한 명목적인 교회에 성령이 역사하시도록 기도하자. 예수님이 그들의 삶을 통해 빛을 비추시고, 그들이 무슬림 이웃에게 부담을 가지도록 기도하자.
3. 혁명 전 복음주의 교회는 대부분 작고 분투하는 공동체였다. 무슬림에서 개종한 신자도 거의 없었다. 혁명이 가져온 충격적인 변화와 고통으로 교회는 짧은 기간의 갱신, 전도 활동, 문서 배포, 많은 개종자를 얻을 수 있다. 교단 사이에 있던 장벽은 부수어졌다. 정권이 복음주의자에게 보이는 적의 때문에 오히려 페르시아인이 기독교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결과,특히 장로교와 하나님의 성회가 성장했다. 위협, 침투, 몇몇 교회 지도자의 순교, 무슬림을 예배에 받아들이지 말라는 정부의 압력 때문에 많은 교회가 가정 교회 모델을 채택하였다. 현재 공적인 모임을 갖는 교회는 대부분 정부 방침대로 공공연히 무슬림을 복음화하지는 않는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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